글 | 상쾌한코알라🐨

저는 아오이 유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몰랐습니다. 포스터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어느새 2박 3일 만에 8부작을 다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일본 드라마 <가스인간>은 1960년 혼다 이시로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가타야마 신조 감독과 연상호·류용재 각본 콤비가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한국 드라마의 빠른 전개 문법에 일본 특촬 장르의 감성을 얹은, 꽤 독특한 조합입니다.
캐릭터 분석: 이 드라마를 살린 건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순전히 아오이 유우 때문이었습니다. 청순함의 대명사로 기억하던 배우가 복수를 설계하는 기자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실제로 보니 그 기대를 한참 넘어섰습니다. 코노 쿄코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피해자도, 단순한 악당도 아닙니다. 어릴 때 화이트센터에서 만난 렌 아저씨를 잃은 후 수십 년을 버텨온 사람입니다. 그 내면의 무게를 아오이 유우가 표정 하나하나로 전달하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히로세 스즈가 연기한 카호는 처음엔 비중이 작아 보였지만, 4화 이후부터 이 드라마의 감정적 중심축이 됩니다. 얼굴에 선천성 반문(斑紋), 즉 태어날 때부터 생기는 색소 이상 반점을 가진 히키코모리 캐릭터인데, 이 설정이 나중에 드라마의 주제 의식과 맞닿는 지점이 생깁니다. 제가 처음 히로세 스즈를 봤을 때 이민정이랑 너무 닮았다 싶어서 잠깐 화면을 멈췄을 정도였는데, 그 인상이 강해서 오히려 캐릭터에 더 빠르게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오구리 슌은 형사 오카모토 켄지 역으로 나오는데, 이 캐릭터가 단순 수사물 주인공에 그치지 않고 쿄코와의 과거 관계, 아버지의 죽음, 경시총감과의 연결 고리 등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볼수록 애정이 갑니다. 첫 연기 도전이라는 UTA도 가스인간이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아가 없는, 일종의 웨폰(weapon)에 가까운 존재를 연기하는 건 경험이 많은 배우도 쉽지 않을 텐데 꽤 설득력 있게 해냈습니다.
주요 출연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오이 유우 — 방송국 기자 코노 쿄코. 드라마 전체의 감정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
- 오구리 슌 — 형사 오카모토 켄지. 수사 주도 인물이자 쿄코의 전 연인
- 히로세 스즈 — 히키코모리 인터넷 방송인 카호. 4화부터 극의 중심축으로 부상
- 하야시 켄토 — 카호의 오빠 후지타. 욕심이 화를 부르는 캐릭터
- UTA — 가스인간. 자아 없이 소원만 들어주는 존재로, 드라마 내 크리처(creature) 포지션
- 오카베 타카시 — 도지사 미우라. 한국 영화식 빌런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김
주제 의식과 결말 해석: '인간 연료'라는 불편한 은유
재미없다는 후기들이 꽤 있다고 하는데, 제가 직접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속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드라마가 던지는 주제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8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 개념은 '바이오매스 발전(biomass power generation)'이라는 은유입니다. 바이오매스 발전이란 유기물을 연소해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드라마에서는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마치 연료처럼 소모된다는 구조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실제로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 이 염세적 세계관이 일관되게 등장합니다. <지옥>이나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도 느껴지던 그 무거움이 <가스인간>에도 깔려 있습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납치해 방사성 운석 정화 작업에 투입하는 장면은, 일본 특촬 장르의 문법을 빌렸지만 다루는 내용은 결코 장르물의 가벼움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회 비판적 주제가 픽션과 결합할 때 어느 한쪽이 흐려지기 쉬운데, 이 드라마는 그 균형을 후반부로 갈수록 잘 잡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결말 해석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쿄코가 가스인간과 함께 소멸하는 장면 직전에 등장하는 회상씬이 중요합니다. 어린 쿄코가 렌 아저씨에게 "아빠가 되는 게 소원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 '아빠'라는 소원이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켄지의 집 창문으로 들어오는 연기가 여자의 형상을 이루는 묘사는 쿄코가 렌 아저씨와는 다른 버전의 가스인간이 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자아 없이 소원만 들어주는 웨폰이 아니라, 자아를 가진 채 연기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일 수 있다는 거죠. 이 열린 결말(open ending)은 시즌 2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완결적입니다.
넷플릭스 공식 발표 자료에 따르면 <가스인간>은 공개 직후 일본 및 한국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상위 차트에 진입했습니다(출처: Netflix). 또한 원작 영화 <가스인간 제1호>를 연출한 혼다 이시로 감독은 1954년 <고지라> 초대 감독으로, 일본 특촬물(tokusatsu)의 아버지로 평가받습니다. 특촬물이란 미니어처, 특수 분장, 광학 합성 등 물리적 특수효과를 활용해 만든 일본 고유의 영상 장르를 말하며, 이 전통이 <가스인간>의 크리처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IMDb — 혼다 이시로 감독 프로필).
4화가 이 드라마의 분기점이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본 서브컬처(subculture), 즉 지하 아이돌, 인터넷 방송 문화 등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 문화적 감성이 갑자기 전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질감 자체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 즉 사회 주변부 인물들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즌 2가 나온다면 카호가 사라진 쿄코를 찾아 나서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고, 그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스인간 드라마, 원작 영화를 먼저 봐야 하나요?
A. 원작 영화를 보지 않아도 드라마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드라마는 1960년 원작의 세계관을 완전히 새로 재구성했으며, 원작 지식 없이도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오히려 원작 없이 보는 것이 반전 요소를 더 신선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Q. 4화가 호불호 갈린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A. 4화는 지하 아이돌 뮤직비디오, 인터넷 방송 문화 등 일본 서브컬처 감성이 갑작스럽게 전면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기존 범죄 스릴러 톤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는 시청자도 있고, 오히려 이 전환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느끼는 시청자도 있습니다. 4화까지는 일단 버텨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Q. 가스인간 결말에서 쿄코는 어떻게 된 건가요?
A. 마지막 장면에서 켄지의 집으로 연기가 들어와 여자의 형상을 이루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는 쿄코가 가스인간과 함께 소멸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스인간으로 재탄생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명확한 설명 없이 끝나는 열린 결말이기 때문에,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이 부분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일드 장벽 없이 볼 수 있을까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각본을 연상호와 류용재가 공동으로 썼고 감독인 가타야마 신조도 봉준호 감독 연출팀 출신으로 한국 영화 영향을 많이 받은 스타일입니다. 일드 특유의 느린 호흡이나 과장된 감정 표현 같은 단점이 거의 없어서, 한국 드라마 시청자라면 큰 이질감 없이 정주행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가스인간>은 장르물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속에는 꽤 묵직한 사회 비판 서사가 담겨 있는 드라마입니다. 엄청난 반전이 연속으로 쏟아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이 쌓이면서 결말에 다다랐을 때 감정적으로 꽤 큰 여운이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드라마는 초반 2~3화를 어떻게 견디느냐가 관건인데, 4화까지만 버티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연상호 작품 특유의 호불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개인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오이 유우와 히로세 스즈의 연기, 오카베 타카시의 인상적인 빌런 연기, 그리고 열린 결말이 남기는 해석의 재미를 생각하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 2가 나온다면 카호 중심의 서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