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상쾌한코알라🐨

차 한 잔을 공짜로 건넨 게 스토킹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질문을 머릿속에 품은 채 넷플릭스 오리지널 《베이비 레인디어》를 단숨에 다 봤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7부작 영국 드라마로, 바텐더 돈이 건넨 작은 호의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갈아엎는 스토킹으로 번지는지를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보는 내내 불편했고, 불편한 만큼 오래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차 한 잔이 부른 스토킹, 처음엔 그냥 불쌍해 보였다
드라마는 바텐더 돈이 돈도 없어 보이는 여성 손님 마사에게 공짜로 차를 건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사소한 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사는 그 순간을 연애 감정의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이후 마사는 돈에게 80여 통의 메일을 보내고, 직장에 찾아오고, 집 앞을 맴돕니다. 전형적인 스토킹(stalking) 행동 패턴입니다. 여기서 스토킹이란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연락을 시도해 불안감과 공포를 유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전체를 통제하는 범죄입니다.
처음 몇 화를 볼 때만 해도 저는 마사가 그냥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쉬지 않고 떠들고, 웃기려 애쓰고, 거절당해도 또 나타나는 모습이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회차가 쌓일수록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마사의 행동이 도를 넘기 시작했고, 저도 어느 순간부터 돈의 시선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의 상당수는 처음에 피해자조차 "이게 범죄인가?"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접촉에서 시작됩니다(출처: 경찰청). 드라마가 그 초반의 모호함을 정말 잘 잡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사를 향한 제 첫 반응이 "불쌍하다"였던 것 자체가, 피해자가 왜 오래 버티다 신고하는지를 역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 스코틀랜드 출신 마사, 자신을 백만장자 변호사로 소개하며 접근
- 돈에게 80여 통의 메일 발송, 직장·거주지 주변 반복 출몰
- 친절을 연애 신호로 오해하는 인지 왜곡이 스토킹의 출발점
트라우마가 만든 역설, 왜 돈은 신고하지 못했나
드라마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부분은, 돈이 마사를 6개월 동안 신고하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단순히 소심하거나 무기력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돈에게는 5년 전 겪은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trauma)가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후 심리적·신체적으로 지속되는 후유증을 말하며, 사건 이후에도 일상 판단력과 정서 반응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명 작가 데리언에게 약물을 건네받고 성폭행을 당한 돈은, 이후에도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독과 착취의 사이클에 갇혀 있었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돈이 그 상황을 "내가 자초했다"는 극심한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성폭력 피해자가 왜 침묵하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감각적으로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그 자기혐오와 공허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마사의 맹목적인 찬사가 돈에게 위안이 됩니다. 마사가 "아기 순록"이라며 보내는 다정한 음성 메시지가, 무너진 자존감을 잠깐이나마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집착에 의존하게 되는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현상입니다. 학대적 관계에서 가해자가 간헐적으로 보이는 온화한 태도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묶어두는 메커니즘을 가리킵니다. 드라마는 이 지점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해서, 보는 내내 답답하면서도 돈의 선택이 이해됐습니다.
남성 피해자의 목소리, 대중문화가 외면해온 이야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스토킹 피해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결국 이 작품의 가장 큰 핵심은 남성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었습니다. 데리언에게 당한 성착취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이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회피하지 않아서, 보는 내내 불편하고 또 중요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더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자가 당할 리가 없다"는 편견, 혹은 신체적 힘이 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오해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그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데리언은 돈보다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업계 권력과 약물이라는 사회적·심리적 권력구조를 이용했습니다. 돈이 무력해진 건 근육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구조 앞에서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서사는 대중문화에서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남성이 피해자인 서사는 보통 코미디나 반전 소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베이비 레인디어》는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진지하게 다룹니다. 한국 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남성의 신고율은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피해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출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드라마 속 돈의 6개월이 바로 그 통계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실화가 불러온 윤리 논란, 드라마는 어디까지 허용되나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베이비 레인디어》는 현실에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실화 기반 드라마인 만큼 시청자들이 실존 인물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극 중 마사의 모델로 지목된 스코틀랜드 출신 변호사 피오나 하비는 전 세계적 사이버 불링에 노출됐습니다. 피오나 하비는 넷플릭스가 사실을 왜곡해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대형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드라마의 완성도와 윤리적 문제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체감한 것처럼, 실화 기반 작품은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선을 긋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작품이 강렬할수록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지고, 시청자는 본능적으로 "저 인물이 실제로 누구지?"를 찾게 됩니다.
비판은 또 있습니다. 마사를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결핍과 상처를 가진 인간으로 입체적으로 그린 것이,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가해자에게 과도한 서사와 동정을 부여했다는 지적입니다. 동시에 정신 질환자를 지나치게 기괴하고 위협적으로 묘사해 편견을 강화했다는 상반된 비판도 공존합니다. 저는 두 비판 모두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체적 묘사가 이해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이해가 면죄부처럼 읽힐 위험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결국 이 작품을 둘러싼 논란이 드라마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을 때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이며, 그 과정에서 실존 인물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이비 레인디어 실화인가요? 어디까지 진짜 이야기인가요?
A. 네, 주연 배우이자 원작 작가인 리처드 가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다만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 효과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있으며, 마사의 실제 모델로 지목된 피오나 하비는 사실 왜곡이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서부터 창작인지는 작가 본인 외에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Q. 베이비 레인디어 왜 '아기 순록'인가요? 제목이 무슨 뜻인가요?
A. 마사가 돈을 "아기 순록"이라고 부르며 집착하는 데서 제목이 유래했습니다. 동시에 돈이 어린 시절 받았던 순록 인형이 마사에게도 위안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며, 제목이 단순한 별명을 넘어 두 사람의 결핍과 상처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기능합니다.
Q. 돈은 왜 마사를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요?
A. 단순히 무기력해서가 아닙니다. 돈은 유명 작가 데리언에게 성착취를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극심한 자기혐오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공허함을 마사의 맹목적 찬사가 역설적으로 채워주었고,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트라우마 본딩으로 이어져 관계를 끊지 못한 것입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게으름이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상처의 결과였습니다.
Q. 마사는 드라마에서 정신 질환자로 나오나요?
A. 명확한 진단명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마사의 행동 패턴은 경계성 인격 장애나 애착 장애와 연관된 특징들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는 마사를 단순한 악인이 아닌 상처 입은 인간으로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했지만, 일부에서는 이것이 정신 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했다는 비판도 제기했습니다.
결론
《베이비 레인디어》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불편하고, 씁쓸하고, 그러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흔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집착의 경계, 피해자와 가해자의 복잡한 심리, 그리고 성별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침묵하게 만드는 수치심과 죄책감. 이 드라마는 그 모든 것을 불편할 만큼 정직하게 다룹니다. 윤리적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대중문화에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남성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전면에 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뉴스에서 스토킹·데이트 폭력 관련 사건을 볼 때마다, 이 드라마의 장면들이 겹쳐 보입니다. 피해자들이 더 빨리, 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시길 권합니다.